정든 선생님과 함께하기 위해

새해들어 아름답지만(어린이에겐) 민망한(어른들에게) 미담기사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전주 A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전북교육청을 찾아가 집단민원을 신청한 내용이었다. 아마도 시점은 작년말인 듯 싶다. 초등생 17명이 물어물어 전북교육감실까지 찾아왔는데 마침 부재중이라 대변인을 대신 만났다는 것. 어린이들은 “정들었던 담임 선생님이 곧 계약이 만료돼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한다. 졸업식을 지금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교육감께서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 내용인즉 원래 담임교사는 작년 9월 몸이 아파 휴직을 신청했고 대신 기간제교사가 10월부터 3개월 동안 아이들을 맡았다는 것. 

그런데 방학 시점에 원래 담임교사가 복직 의사를 밝혔고 결국 학교장은 기간제 교사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한 것이다. 3개월간 기간제 교사와 정이 듬뿍 든 어린이들은 기간제 교사가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돼 실의에 빠지게 됐다. 결국 이들은 궁리끝에 교육감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 아이들은 1시간을 걸어서 전북도교육청을 찾아와 안타까운 사연을 직접 전한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너무 좋다. 졸업식까지 우리와 같이하기로 했는데 왜 갑자기 그만둬야 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뒤늦게 보고를 받은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먼 길을 찾아와준 아이들이 고맙고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예쁘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결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교육청의 연락을 받은 학교 측은 담임 교사에게 이런 사정을 전하며 복직을 두 달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교사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결국 아이들의 신문고식 민원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꼼수가 비수가 되어

아이들의 바램대로 이뤄진 끝은 아름다웠지만 필자가 확인한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해당 기사를 접하기 몇 일 전 이미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방학 ‘신경전’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휴직을 낸 정규직 교사들이 업무부담이 없는 방학시점에 맞춰 앞당겨 복직신청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간제 교사는 계약기간을 2개월 가량 남겨둔 채 도중하차하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 방학이 되면 수업이나 업무 부담이 거의 없다는 점을 노려 ‘꼼수’를 쓰는 것이다. 반면, 기간제 교사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30일 전에만 계약 만료를 통보하면 꼼짝없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정규직의 ‘꼼수’가 비정규직에겐 ‘비수’가 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제도적 허점에도 각 시·도교육청은 조기 계약 만료에 따라 고용 불안에 놓이는 기간제 교사를 구제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기간제 교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휴직했던 정규직 교사가 조기 복귀할 때 대처방안을 묻는 게시물들이 종종 올라온다. “방학 중 급여를 정규직 교사들이 가져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계약기간이 남았는데 출산 휴직한 정규직 교사가 조기 복직하려 한다”는 등의 하소연들이 올라온다.


지혜는 세상 속에서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의 심정으로 1시간을 걸어 교육감실을 찾은 17명의 작은 천사들. 이들도 언젠간 우리 사회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사태를 통해 비정규직 교사의 허약성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더 큰 걱정이 가슴을 짓누른다. 고학년이 됐을 때 자칫 정규직-비정규직 교사를 차별해서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전주 초등생 보도가 있던 날 YTN 방송영상을 통해 무너진 교실의 모습이 알려졌다. 이천 모 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교사폭행 장면이다.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교사를 빗자루로 때리고 침을 뱉는 행동, 야유와 비웃음이 남발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은 같은 반 학생이 해당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알려지게 됐다. 언론와 SNS 댓글에는 무너진 교권, 교권침해의 현장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학생들을 제지할 엄두도 내지 못한채 쩔쩔맨 피해교사는 다름아닌 비정규직 기간제였다. 과연, 해당 교사가 정규직이었다면 학생들의 노골적인 모욕행위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기간제 교사라는 약점을 악용한 악동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전주 모 초등학교의 예처럼 정규직 교사가 비정규직 교사의 권리를 무시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티없는 17명의 초등생 가운데 장차 이천 고교생처럼 비정규직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청소년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식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세상 속에서 배우는 게 많다. ‘더불어 산다’는 세상 덕목은 주변 어른들의 그림자를 보면서 흉내내는 것이다. 

부디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차별이 드러나지 않도록 우선적인 제도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 또한 우리 학부모들도 기간제 교사에 대한 허투른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달리 대우받는 부당한 ‘반칙 세상’을 바로잡기. 이 당연한 일을 결코 후대에 떠넘기려 해선 안된다. 바로 지금 우리들이 책임지고 해결해 나갈 숙제다.


글쓴이 : 권혁상 (청주노동인권센터 운영위원이고, 충북인뉴스 편집국장입니다.)


'노동&이슈 > 기사&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사람은 노동할 권리를 가진다  (0) 2017.10.19
임금, 일자리  (0) 2017.02.03
어느 초등생들의 민망한(?) 민원  (0) 2017.02.03
나쁜 대통령  (0) 2017.02.03
선무당이 지배한 사회  (0) 2017.02.03
노동자와 정치  (0) 2017.02.03
Posted by 청주노동인권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