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불이야!”
“에에에엥 화재가 났습니다. 지금 빨리 대피하세요. 화재가 났습니다. 지금 빨리 대피하세요.”
여기 저기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비상구를 통해서 밖으로 대피하느라 공장안이 아수라장이다.
몇 사람은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다 나오고 언제 입었는지 소방옷을 입은 몇 명이서 들것을 들고 연기가 자욱한 공장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깃발을 들고 차량과 인원을 안내하는 사람도 있고 공장 외부에 있는 옥외 소화전에서 호스를 연결하여 화재가 난 곳을 향해 물을 뿌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곧이어 언제 도착했는지 소방차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고 소방차에서도 화재가 난 곳을 향해 물이 발사되었다. 소방호스를 끌고 불이 난 곳으로 들어가는 소방대원도 보였다. 공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사거리에 집결해서 모여 있었다.
한 20여분 지났을까? 확성기를 들고 팔에는 안전이라고 띠를 두른 과장이 “상황종료, 상황종료”를 외치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하면서 사거리로 집결했다.
지금까지는 엘지화학 청주공장 회로재료 사업부의 소방훈련 내용이었다. 세월호 참사 후 공장 전체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화재 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방훈련을 불시에 실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훈련이다. 미리 어제부터 각본에 의해 구조팀, 소화기팀, 소화전팀, 소방차팀, 안내팀을 다 정해놓고 몇 번의 반복 훈련을 한 것이다.
그래놓고 오늘은 청주공장 대표인 주재임원 앞에서 우리는 불이 나도 이렇게 잘 훈련 되어 있으니 걱정마라는 식이다. 참관하는 주재임원 입장에서는 훈련을 많이 한건 모를 테니 우리들의 연기에 박수를 보냈고 이렇게 평소훈련이 잘 되어 있는걸 보니 안심이 된다고 소감까지 말했다. 어제 우리랑같이 훈련을 진두지휘했던 회로소재 생산팀장은 주재임원 앞에서 어깨까지 우쭐해하며 “여러분 화재시에 이렇게 잘 대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나 화재가 나더라도 우리공장은 단 한사람의 인명피해도 없이 잘 해쳐나갈 것이라는 것을 오늘 훈련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라며 멋진 인사말로 마무리 했다.
하지만 이게 훈련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었다면 이런 대처가 가능했을까?
그 동안 우리공장의 모습을 보면 이런 대처가 가능할 리 없다. 허구한 날 반복되는 화재오작동에 공장 사람들은 양치기소년에 길들여졌고 “에이, 시끄러워. 또 오작동이야” 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곤 했다. 다행히 아직까진 화재가 아닌 오작동이라서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었다. 만일 진짜 화재가 발생한다면 우리공장 사람들도 공장안에 갇혀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할건 뻔한 일이다.
소방훈련을 마치고 다시 공장안으로 들어와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싸이렌이 울렸다.
“에에에엥 화재가 났습니다. 지금 빨리 대피하세요.”
그러나 누구하나 밖으로 대피하는 사람은 없었고 “에이 뭐야? 금방 훈련 끝났는데 또 오작동이야? 좀 제대로 고쳐 놓지. 훈련하면 뭐할겨?” 이렇게 투덜대는 소리만 들렸다.
우리 청주공장도 불과 1년 전에 폭파 사고로 8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를 겪었다. 그간 화재도 몇 번 있었고 산재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지 한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우리들이 생각하는 안전의식은 벌써 저 멀리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설마 나한테? 설마 우리공장에?’ 이러고 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이에 우리의 몸은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어 언제 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 결국 사고가  나면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사고를 당한 당사자와 그 가족들만 억울함을 호소하는게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 아니던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를 비롯해 내 가족 내 동료의 안전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안전의식을 바꿔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아닌, 미리 고쳐서 소 잃지 않는 그런 공장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전하지 않으면 일하지 말자.’ 오늘따라 이 글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글쓴이 : 염기유 (lg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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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주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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